영문법

CEFR 문법 레벨 가이드: A1부터 C2까지, 각 단계에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

by twibble 2026년 1월 5일

영문법 책을 펼치면 대부분 비슷한 순서로 시작한다. be동사, 현재시제, 과거시제, 현재완료, 관계대명사. 차례대로 쭉 밟아가는 식이다. 그런데 한참 공부하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어디쯤이지?" 중급이라는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문법을 쓸 수 있어야 중급인지가 불명확하다.

이 질문에 답하는 기준이 CEFR이다. A1에서 C2까지 6단계로 나뉘어 있고, 각 단계에서 학습자가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기술한 유럽 공통 참조 기준이다. 문법 학습에도 이 프레임을 씌우면 막연함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1. 내 문법 레벨이 왜 모호한가

CEFR은 Basic User(A1-A2), Independent User(B1-B2), Proficient User(C1-C2) 세 그룹으로 구성된다. 총 6단계다. 2020년에 발표된 Companion Volume에서 디스크립터가 업데이트되면서 각 레벨의 기준이 더 세밀해졌다.

문제는 CEFR 디스크립터 자체가 범용적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문장을 쓸 수 있다" 같은 기능 중심 서술이라, 영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법 항목이 A2인지 B1인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프랑스어든 일본어든 모든 언어에 적용되는 틀이다 보니, 언어별로 더 구체적인 문법 프로파일을 함께 활용해야 실전에서 쓸모가 있다.

2. 그래서 나온 것이 English Grammar Profile이다.

English Grammar Profile은 CEFR 단계별 영어 문법 형식과 기능을 매핑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캠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와 캠브리지 영어 평가원이 주도했고, 개발 기간만 4년이 걸렸다.

근거가 상당하다. 5,500만 단어 규모의 Cambridge Learner Corpus를 기반으로 했고, 140개 이상의 모국어 배경, 200개국 이상에서 수집한 20만 건 이상의 시험 스크립트를 분석했다. 약 3,200만 개의 오류 태깅 데이터를 처리해서, 1,200개 이상의 문법 역량 항목을 도출해냈다. 어떤 문법 구조가 어느 레벨의 학습자들에게서 정확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는지를 데이터로 잡아낸 것이다.

쉽게 말하면, B1 학습자는 현재완료를 쓰기 시작하지만 가정법 과거완료는 거의 못 쓴다는 식의 패턴을 수천만 건의 실제 학습자 데이터에서 확인한 결과다. "문법책에서 이렇게 배우니까"가 아니라, "실제 B1 학습자가 이걸 이 단계에서 쓰기 시작하더라"라는 실증 기반이다.

3. A1-A2 기초를 쌓는 단계

A1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만 다룬다. be동사로 자기소개를 하고, 현재 시제로 일상을 설명하고, 단순한 의문문을 만드는 수준이다. "I am a student." "She likes coffee." 이 정도의 문법이 정확하게 나오면 A1은 통과다.

A2로 올라가면 과거 시제가 들어온다. 주말에 뭘 했는지 말할 수 있고, 비교급으로 두 가지를 비교할 수 있다. 미래를 나타내는 will과 be going to 구분도 이 단계에서 시작된다. 전치사 사용이 좀 더 다양해지고, 접속사 because, so로 문장을 이어붙일 수 있게 된다.

A2까지의 문법은 양이 많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정확성을 잡지 않으면 이후 단계에서 흔들린다. "어제 한 일"을 과거 시제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지, 3인칭 단수 -s를 빠뜨리지 않는지. 기초일수록 정확하게 쓰는 연습이 중요하다.

4. B1은 전환점이 되는 레벨

B1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CEFR에서 B1의 핵심 기능은 '경험 설명'이다.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미래 계획을 전달하고, 의견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문법적으로는 이게 꽤 큰 도약을 요구한다.

현재완료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단순히 "I have been to Japan" 수준이 아니라, for/since와 함께 기간을 나타내는 용법, already/yet/just를 활용한 용법까지. 과거 시제와 현재완료의 구분을 맥락에 맞게 할 수 있어야 B1이다.

수동태도 이 단계에서 등장한다. "The report was written by the team." 조동사 활용이 넓어지면서 should, might, could로 조언이나 가능성을 표현하는 것도 B1의 범위다. 관계대명사 who, which, that으로 두 문장을 하나로 묶는 것까지.

한국어 화자에게 B1은 체감 난이도가 꽤 높은 구간이다. 현재완료 개념 자체가 한국어에 없고, 수동태를 자연스럽게 쓰는 감각도 학습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 하는 구간이다.

5. B2는 논증과 가정의 세계

B2에서 요구되는 핵심 기능은 '논증과 가정'이다.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 가정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정법이 등장한다. "If I had more time, I would travel more."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B2다. 가정법 과거와 가정법 과거완료를 구분해서 쓰는 것, 혼합 가정법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비현실적 가정을 문장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문장 구조도 복잡해진다. 분사 구문이 들어오고, 보고문(reported speech)에서 시제 일치를 맞출 수 있어야 하며, 양보의 접속사(although, despite)를 사용한 복문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Although the project was delayed, the team managed to meet the deadline." 이런 문장이 자연스럽게 쓰이면 B2 문법 영역 안에 있다.

토익 700점대, 아이엘츠 5.5~6.0 정도가 대략 B2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영어 중급"이라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구간이 바로 이 레벨이다. 무엇을 해야 B2인가가 명확해지면, 막연히 문법책을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학습 계획을 짤 수 있다.

6. C1-C2, 유창성과 정밀함의 영역

C1은 '자연스럽고 유창한' 사용이 기준이다. 새로운 문법 항목을 배운다기보다, 이미 아는 문법을 더 정밀하고 유연하게 쓸 수 있느냐의 문제다.

도치 구문(Not only did he finish early, but he also…), 강조 구문(It was the deadline that worried me most), 혼합 가정법(If I had studied harder, I would be in a better position now) 같은 구조가 C1에서 나타난다. 문장 안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조절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다.

C2는 "원어민에 가까운 정확성과 자연스러움"이다. 문법 오류가 거의 없고, 문체를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 논문을 쓸 때와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문법 선택이 달라지는 것. C2는 대부분의 학습자에게 도달점이라기보다 방향성이다. 원어민 환경에서 수년간 생활하거나 집중적인 학술 활동을 하지 않으면 도달하기 어려운 레벨이라는 점을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게 낫다.

7. 레벨별 학습을 실전에 적용하는 법

English Grammar Profile이 유용한 이유는, 교육기관과 고용주가 시험 비교나 자격 판단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개인 학습자에게 더 와닿는 건 "내가 지금 어디 있고, 다음에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자기 레벨을 파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각 레벨의 핵심 문법을 직접 써보는 것이다. 가정법 과거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 B2 문법은 어느 정도 갖춘 것이고, 현재완료 for/since 용법에서 자주 실수한다면 B1을 더 다져야 한다는 신호다.

레벨이 잡혔다면, 한 단계 위의 문법 항목에 집중한다. B1에 있다면 B2 핵심 항목인 가정법, 분사 구문, 양보절을 공략한다. 전체 문법 공부 순서 가이드에서 다룬 학습 로드맵과 겹쳐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구간을 더 정확히 잘라낼 수 있다.

문법만 따로 떼어 공부하는 것보다, 같은 CEFR 레벨의 어휘와 병행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B2 문법을 익히면서 B2 수준의 어휘를 동시에 쌓으면, 문장을 만들 때 문법 구조와 단어가 함께 움직인다. CEFR 어휘 로드맵이나 Oxford 3000 커버리지를 참고하면 어휘 레벨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외운 문법은 반드시 써먹어야 산다. 규칙을 이해한 것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한 주에 하나의 문법 항목을 정해서, 그 주 내내 일기든 이메일이든 영작에 의식적으로 끼워 넣는 연습이 효과적이다. 복습 주기는 간격 반복 학습법을 따르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확률이 높아진다.

8. 각 레벨의 대표 문법을 한눈에 정리하면 이렇다.

| 레벨 | 핵심 문법 항목 | 할 수 있는 것 | |------|---------------|-------------| | A1 | be동사, 현재 시제, 단순 의문문, 기본 전치사 | 자기소개, 간단한 일상 묘사 | | A2 | 과거 시제, 비교급/최상급, will/be going to, because/so | 과거 경험, 간단한 비교, 미래 계획 | | B1 | 현재완료(for/since), 수동태, 조동사(should/might), 관계대명사 | 경험 설명, 조언, 의견 표현 | | B2 | 가정법 과거, 분사 구문, 보고문, 양보절(although/despite) | 논증, 가정, 복잡한 의견 전개 | | C1 | 도치, 강조 구문, 혼합 가정법, 문체 조절 | 정밀한 뉘앙스, 학술적 표현 | | C2 | 전 영역의 정확성과 유연성 | 원어민에 준하는 자연스러움 |

이 표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English Grammar Profile의 1,200개 이상 문법 역량 항목 중 대표적인 것만 추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 있고 다음에 뭘 봐야 하는지"를 잡는 데는 이 정도 윤곽이면 충분하다.

레벨 기반으로 문법을 접근하면 한 가지가 달라진다. 문법책을 1페이지부터 끝까지 밀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다. 자신의 현재 레벨에서 빈틈이 있는 항목을 먼저 채우고, 다음 레벨의 핵심 항목으로 올라가는 방식. 같은 시간을 써도 체감 성장이 빠르고, "이만큼은 할 수 있다"는 기준선이 명확하니 동기 부여도 유지된다.

A1부터 C2까지의 지도를 갖고 있으면, 현재 위치에서 다음 걸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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